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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ern Europe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구 유고슬라비아 현 세르비아의 레전드, 프리킥 스페셜 리스트 시니샤 미하일로비치(Siniša Mihajlović) 일대기



 유고슬라비아의 시니샤 미하일로비치(Sinisa Mihajlovic)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아재일까. 어린시절 프리킥의 대명사로 베컴, 주닝요, 레코바 등과 함께 항상 거론되던 세르비아(구 유고슬라비아)의 대표적인 선수다.

* 미하일로비치에 대한 자세한 스토리는 아래를 확인해주세요.

 


















 미하일로비치는 현 크로아티아의 부코바르(Vukovar)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세르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인데 유고슬라비아가 민족 융합을 위해 많은 세르비아인들을 강제 이주 시켰고, 비록 크로아티아 지역이지만 자신은 세르비아인이라는 인식이 강한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민족주의 정신이 매우 높은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미하일로비치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고향 팀인 보로보(Borovo) 유스팀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어린나이에 프로계약을 맺었다. 그의 놀라운 재능은 일찍이 알려졌고, 디나모 자그레브가 그를 데려오기 위해 테스트도 진행했다. 코치들은 모두 그의 재능에 반해 영입을 승낙했으나, 유소년 계약을 제의하자 미하일로비치는 단칼에 거절하고 고향팀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 후 유고슬라비아의 황금기의 시작이었던 1987 FIFA 유러피안 유스 챔피언십(U-20 월드컵)에서 우승을 하며 주가를 올렸고, 보이보디나를 거쳐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클럽인 츠르베나 즈베즈다(레드 스타 베오그라드)로 이적하게 된다. 황금세대가 모인 이곳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1991)을 경험하며 주가가 상승한 그는 세리에A 명문인 로마로 이적한다. 그러나 로마에서 힘든 시기를 보낸 후 삼프도리아에서 기량을 다시 펼치기 시작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라치오로 이적해 전성기를 보냈다. 라치오에서 여러 우승을 한 후 인테르로 이적하여 황혼기를 보낸 후 은퇴하여 현재는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내가 축구 보기 시작했을 때 이미 황혼기에 접어든 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패스가 좋은 센터백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원래 어린시절엔 왼쪽 미드필더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가 로마에서 수미로 포지션 변경을 했지만 적응하지 못했다. 이어 바뀐감독이 왼쪽 풀백으로 그를 출전시켰고, 삼프도리아 시절 에릭손 감독에 의해 센터백으로 변신한 후 커리어 마지막까지 센터백으로 주로 뛰었다. 그의 강인한 피지컬과 끈기, 그리고 킥능력이 센터백에서 가장 잘 발휘됐으며 그의 최적의 포지션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여러 기록의 소유자이다. 먼저 1998년 월드컵 때 이란전에서 득점을 하고 독일전에서 자책골을 기록하며 세계에 단 4명만 가지고 있는 월드컵에서 자책골과 득점을 동시에 기록한 선수로 남아있다. 또한 피를로와 함께 세리에A 최다 프리킥 득점 기록(28)을 가지고 있다. 어마어마한 기록과 함께 위닝에서 프리킥 능력치가 매우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미하일로비치는 괴팍한 성격 때문에 언론에 많이 오르락 내리락했는데, 경기중에 언쟁으로 인해 약간의 이성을 잃고 보복성 태클을 날리며 퇴장을 당하는가하면 98월드컵 독일전에서는 말다툼을 하다 예레미스에게 침을 뱉으며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이어 패트릭 비에이라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기도 하고, 아드리안 무투에게 침을 뱉고 발로 걷어 차 징계를 받기도 하는 등 발칸 반도 스타일의 다혈질적인 상남자의 전형을 보여줬다. 재밌는 점은 이 후 비에이라와 인터밀란 코치로, 아드리안 무투와는 피오렌티나 감독으로 다시 만나기도 했다


게다가 엄청난 민족주의자 성향을 지녔던 그는 세르비아 국가대표 감독 시절에 국가대표 행동 수칙을 지정하고 사인하게 했는데, 그 중 중점적인 하나가 경기 전 국가를 꼭 재창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국가대표 선수 중 아뎀 랴이치(Adem Ljajic)가 이행하지 않자, 사인을 했음에도 국가대표에서 퇴출됐다




 이러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엄청난 다혈질의 괴짜이지만 실력과 화려한 선수경력을 겸비한 선수라고 볼 수 있다. 구 유고연방 국가에 오랜만에 이 선수와 같은 캐릭터 뚜렷한 선수가 배출됐으면 좋겠다. 그 때도 프리킥과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굉장히 좋아하던 선수였는데 그 선수 국가의 언어를 전공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는 아직도 프리킥하면 시니샤 미하일로비치가 떠오른다. 앞으로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