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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L] MLS의 전신, 미국프로축구리그 NASL






1996년 월드컵과 피파에서 각 월드컵에 대해 제작하는 GOAL! 이라는 다큐멘터리의 북미 시청률이 백만명을 넘기자 많은 투자자들이 북미시장을 개척하기위해 몰렸다. 때문에 1967FIFA에 승인받은 United Soccer League(USA)오 승인받지 못한 National Professional Soccer League(NPSL)이 출범했다. 이어 CBS 방송국과 중계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종종 광고를 넣기 위해 경기 중 잦은 파울과 경기 지연할 것을 강요받기도했다. 결국 다른 종목에 비해 광고도 힘들고, 텅 빈 경기장에 구분 안 되는 외국인 선수들로인해 북미 사람들에게 어필되지 못했다.

 

결국 1967127일 두 리그를 합쳐 North American Soccer League(NASL) 출범. 1968시즌 기존 22팀 중 5팀을 없애고 17팀으로 시즌 시작했다. 그러나 전체 통틀어 30명밖에 되지 않는 북미 선수, 높은 연봉의 외국인 선수들, 큰 경기장 렌탈 비용, 낮은 입장 수익 등으로 팀들은 많은 손해를 봤고, 결국 cbs는 계약을 철회하고 많은 팀들이 운영을 접게 됐다. 이 후 리그를 파산 안 당할 정도로 겨우 운영을 이어나갔다.

 

NASL은 리그 부흥을 위해 여러 팀들을 아마추어리그로부터 편입시키고 국내 팬들에게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새로운 규정을 개설했는데


- 다른 미국 스포츠들처럼 경기 시간을 down to zero로 시행

- 오프사이드 규정 완화

- 아이스하키와 비슷하게 35야드 지역부터 공을 몰고 와 5초 안에 슈팅을 날려야하는 특이한 승부차기 룰을 개정

- 무승부 이후 승부차기 실시

- 승점을 승리6점 무승부 3점으로 바꿈, 무승부 후 승부차기 승을 3-> 1->6->4로 계속 바꿈

- 득점에 대한 추가 승점을 부여하여 1983년 뉴욕 코스모스가 밴쿠버 화이트캡스보다 승이 2번이나 적었음에도 우승을 차지함


이와 같은 규정을 개설했고, 미국만의 독특한 축구문화를 만들어나갔다.

 

1974년부터 점점 부흥하기 시작, 1975년에 20팀까지 늘어났다.









19756월 뉴욕 코스모스가 펠레를 영입하며 엄청난 관심을 끌게 됐고, 이후 베켄바워를 영입하며 평균관중 4만명 달성, 그러나 전체 평관은 15000을 절대 넘지 못했고, 어떤팀은 평관 5000이하일 정도로 격차가 심했다. 또한 구단들은 외국인 선수에 대한 투자에 회의를 느끼게 됐는데, 유명 외국선수들이 미국인들에겐 듣보(?)였기 때문에 유럽에서 유명 스타들이 대중의 시선을 끌지않고 편하게 시내를 돌아다닐 정도였다. 1972년 대학 드래프트 실시했고, 1979년 두 명의 미국-캐나다 출신 선수 의무 출전 규정을 마련하며 자국 선수 육성에 노력했다(19803명으로 확대).

 

그러나 선수 급료+인도어 사커 리그 운영으로 과도한 지출 발생, 적자가 심해졌다. 결국 팀 숫자 감소+등록 선수 축소로 리그를 이어갔지만 결국 1984년까지 리그가 운영되고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 2팀만이 85시즌 참가 의사를 밝히고 나머지 팀은 해체하거나 실내 축구 리그로 편입하게 됐다.

 

NASL은 결국 실패가 됐지만 캐나다와 미국 월드컵 국대를 배출햇으며 1996년 창단한 MLS의 좋은 선례가 되어 지금의 MLS부흥에 큰 밑거름이 됐다. (특히 NASL을 실패하게 한 자금 관련 규정)